전체 글 536

Cherry Plum Flowers

집 앞에 봄이면 화사한 분홍색 꽃을 피우는 작은 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매해 곰팡이가 핀 줄기도 몇 보여 잘라내기도 하며, 두고 보다 영 시원찮으면 잘라내어 버릴까도 살짝 고려하던 나무다. 작년까지는 듬성듬성 꽃을 피우더니, 올해는 마치 큰 나무처럼 엄청난 양의 꽃을 피우는 거다. 밤이 되니 은은한 꽃향도 퍼진다. 그리 큰 관심이 가는 나무는 아니지만 앵두보다 작은 빨간 열매를 맺은 것도 본 듯하다. 늘 궁금했던 건 어찌 한 나무에서 연분홍과 진분홍의 두 확연하게 다른 색의 꽃이 필까였다. 접목이라도 한 걸까 막연하게 짐작은 했지만 그다지 관심을 끄는 나무도 아니었기에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오늘은 잠시 나가 나무를 들여다보니, 나무가 한 그루가 아니고 두 그루였다. 어릴 적부터 두 그루..

Days in Ohio 2021.04.26

사월의 눈

그날 밤 눈이 올 거라는 예보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예보 내용은, 밤에 비가 내리다 기온이 떨어져 눈으로 변할 것이며, 눈은 바닥을 살짝 덮을 정도일 거라 했다. 서리 정도의 가벼운 눈이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 깜짝 놀랐다. 내 옆에서 커튼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냥이 아기(Augie)의 눈이 엄청 커지며 놀라는 표정이라니. 마치 과장되게 그려 놓은 만화영화 속 냥이 같았다. 나는 무척 놀라기는 했지만 세상을 환하게 덮어버린 그득한 눈을 보자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지난겨울 실컷 보았건만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한번 더 이런 눈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기까지 했는데, 이제 그 바람이 이루어져 매우 흡족한 느낌이 들었다. 길어지는..

Days in Ohio 2021.04.25

앞마당을 둘러보니

오하이오의 봄은 잦은 비와 바람으로 시작한다. 심한 바람이야 지붕이라도 날아갈까, 나무라도 쓰러질까, 사람을 내심 불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지만, 비는 다르다. 비를 좋아하는 나야 언제든 환영이다. 자주 오는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걸 알기에 표 내지 않고 혼자 속으로만 즐기기로 한 지 꽤 여러 해 된다. 올해는 난데없이 날이 한여름처럼 따뜻해져 한 달은 빨리 봄이 온 것 같다. 오월에 피던 꽃들까지 모두 서둘러 활짝 피어 버렸다. 오늘 퇴근해 잡초가 얼마나 많을까 싶어 집 앞을 둘러보니, 내가 심은 적 없는 꽃들도 여기저기 잔뜩 피어있고, 마늘인지 부추인지 알 수 없는 풀까지 무성하다. 막 피어난 민들레는 또 얼마나 어여쁜가. 민들레가 뽑아 버려야 할 잡초로 보이지 않는 때는 바로 지금이 ..

Days in Ohio 2021.04.13

노트북 배터리 교환

이 년 반쯤 된 노트북을 쓰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예고나 경고 없이 노트북 화면이 훅 꺼지곤 하는 거다. 어떤 기계든 품질 보증이 되는 일 년은 멀쩡하다 대략 2-3년 후쯤 품질 문제가 발생하곤 하니, 이 년 조금 넘은 노트북이 벌써 맛이 갔구나 싶어 서운하고 불길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이것이 배터리의 문제라 조금치의 의심도 하지 않은 건 배터리가 70%도 넘게 남아있을 때 그런 일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것이 배터리의 문제라 의심하기 시작한 건, 노트북 화면이 꺼지는 현상이 배터리에 의존하지 않고 전원에 연결해 노트북을 쓸 때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였다. 그냥 이대로 당분간 쓸까 하다가 인터넷, 아니 유튜브를 뒤져본 후 배터리를 교환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Days in Ohio 2021.04.03

2021년 봄

여러 번의 폭설에 질렸을 법도 한데 나는 자꾸 더 눈이 보고 싶었다. 시원스레 한 번만 더 내려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 없이 날은 서둘러 포근해졌고 그 결에 겨우내 엄청 쌓였던 눈은 두어 주가 지나자 모두 녹아들었다.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내가 쨍한 겨울이 이어지길, 게다가 눈이 더 내리길 바라다니 내가 생각해도 그런 내가 낯설다. 나는 어쩌면, 날이 풀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며 식당에 마스크도 없이 다닥다닥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난 두어 달 사람들은 더 경각심을 가지고 마스크도 철저하게 쓰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날이 포근해진 지금은? 귀갓길에 보이는 식당마다 빼곡하게 앉아 저녁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자면 지난 두어 달의 경각심 따위는 없어 보이는 게 불..

Days in Ohio 2021.04.03

코로나 19 백신을 맞다

코로나 19 백신 접종을 받기 위해서는 주 정부에서 허락한 조건(나이, 기저질환 등)이 충족되면 지정한 병원, 약국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우선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 등록과 예약 과정이 경쟁이 심해 긴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을 무한 리프레시(refresh)해가며 원하는 장소와 시간을 물색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내 경우는, 몇 주 전, 한 약국에 등록한 며칠 후 예약이 가능하다는 초대 문자를 받았는데, 당시 일을 하느라 바빠서 두어 시간 후에 들어갔더니, 이미 가능한 예약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초대 문자를 받았을 때 분초를 다투며 바로 클릭해야 함을 그때 깨달았다. 한 번의 낭패를 겪은 다음 날 아침, 다시 이곳저곳을 뒤지다 우연찮게 크로거(Kroger)라는 식료품 회사 연계 약국에서 ..

Days in Ohio 2021.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