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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지난주 금요일, 둘째 시누이의 남편(아주버님)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분의 죽음의 이유가 단순한 노환이 아닌 암이라 부르는 병마와 오랜 기간 싸우고 버티다 가신 것이라 나를 포함한, 장례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만감이 교차했음은 물론이다. 상당한 기간 동안 병원에서 하라는 모든 항암 치료를 빠짐없이 받았고, 더 이상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할 때부터 집에서 가능한 치료와 진통제로 버티셨다. 점점 쇠약해지고 형편없이 몸무게가 줄어가는 모습이, 가끔씩 들러 보는 내게도 고통으로 다가오는데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버티는 본인은 어떨까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매 두 시간마다 모르핀을 투여받으며 거의 종일을 주무시는 그분이 잠시 깨었을 때 이야기를 나눴다. 몸의 고통에 비해 너무나 또렷한 의식과 정신..

Days in Ohio 2022.06.04

도시 거위들

아침 출근길에,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는 거위 10마리를 만났다. 넷은 어른, 여섯은 새끼다. 아마도 두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모양이다. 눈치를 보며 몇 번 멈칫거리다 차가 멈추자 확신을 갖고 사차선 도로를 건너기 시작한다. 선두에 둘, 후미에 하나, 자동차 쪽으로 하나, 어른 넷이 새끼들을 완벽하게 호위한 모양새다. 거위가 당차고 똑똑한 건 대충 알았지만 오늘 거위 열 마리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는 존경심도 더해야겠다고 다짐한다.

Days in Ohio 2022.06.02

봄날 비 온 후

아침엔 쌀쌀하고 낮엔 선선하던 봄 날씨가 일주일 전 난데없이 뜨거운 한여름 날씨로 변했다. 엘리뇨 현상이란다. 꽃이 피었다 말다를 반복하더니 훅하게 더워진 날씨에 주변의 식물들도 어쩔 수 없이 땅을 밀고 나와 서둘러 자라고 있는 게 보인다. 앞마당의 라벤더, 호스타는 잎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게 보인다. 라일락 꽃도 피는 중이다. 몇 년 전 심은 키 작은 소나무들도 조금 더 자라 땅바닥을 기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일주일 전 잡풀을 뽑아 정리한 후 훠이훠이 뿌린 200개의 난쟁이 수레국화 꽃씨도 벌써 싹이 난 게 아닌가. 꽃씨 2,000개라면 모를까 200개라야 뿌릴 때 보면 몇 안 된다. 작년에 하수도 공사 후 맨땅 상태였던 마당에 정성스레 뿌린 잔디 씨도 가냘프지만 싹이 난 게 보인다. 주위의 ..

Days in Ohio 2022.05.16

아마포 방석 여섯 개

쓰지도 않고 오랫동안 갖고 있던 목화솜 요 두 개 중 하나는 절 방석 세트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방석 네 개로 변신을 했다. 지난 몇 주 주말마다 꼼지락거리며 조금씩 작업을 하다 오늘 드디어 바느질을 끝냈다. 제법 두툼한 요는 재봉용 가위로 자르기에는 한계가 있어 좀 더 강력한 절단 가위로 잘라야 했다. 솜은 면으로 속껍질을 만들어 씌우고, 겉감은 예전 아랍에 살 때 사 둔 미색과 살구색 아마포가 제법 있어 그걸 잘라 만들었다.

Days in Ohio 2022.05.01

달걀 여섯 다스

우연히, 한 시골 마을서 농사를 짓는다는 분을 알게 되었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자주 나오니 배달쯤 어렵지 않다길래 그럼 달걀 여섯 다스만 부탁한다고 했더니 정말 바로 다음 날 내 일터까지 배달을 해주셨다. 저녁에 집으로 가져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 꾸러미 하나를 열어 보았다. 그걸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지는 게 아닌가. 늘 사다 먹던 달걀들은 흰색 아니면 갈색 단 두 가지 색이었던 반면, 이 달걀들은 크기도 모두 제각각인데다 색깔도 회색, 옥색, 살구색부터 진한 갈색까지 알록달록 다양해 보는 눈이 다 즐거웠다.

Days in Ohio 2022.05.01

2022년 봄, 수양벚나무

봄이다. 지루하고 우울하게 이어지는 팬데믹 시절임에도 내 마음을 살짝 건드리며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망설이다 포기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어디 멀리 꽃구경이라도 한번 다녀올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계절이니, 좋은 계절임에 틀림없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올봄은 두어 주 늦게 온 것 같다. 수양벚나무, 내가 좋아하는 나무 중 하나다. 마치 막대 하나가 땅 위에 꽂힌 채 부담스러울만치 무거워 보이는 가지와 잎들을 머리 위에 잔뜩 이고 있는 듯한 과장된 모양새를 보자면, 한편 우습기도, 한편 측은하기도 하다. 잎이 무성한 여름과 가을까지는 그런대로 몸 전체가 조화를 이루어 볼만하지만 겨울을 맞아 잎들을 다 떨구고 몽당연필 마냥 헐벗고 서있는 꼴을 보자면 너무나 초라하고 측은해 자꾸만 눈길을 보내게 되는..

Days in Ohio 2022.04.16

흔한 아침 풍경

아기는 2022년 3월 20일로 세 살이 되었고, 프랭키는 다음 달 말에 한 살이 되니 아직도 크는 중인 새끼다. 아기는 뭐가 그리 피곤한지 얼굴까지 가리고 쿨쿨 자고 있고, 프랭키는 아침 내내 졸졸 따라다니며 나름 즐거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중이다. 사흘 쉬는 주말, 세탁기에 빨래를 잔뜩 넣어 돌리며 컴퓨터 앞에 앉는 느긋함이라니. 여유로운 아침이다.

Days in Ohio 202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