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221

쌀쌀한 봄, 그래도 꽃을 피우려

지난 닷새 내내 비도 매일 내리며 으슬으슬 추웠다. 낮 최고기온이 화씨 45도(섭씨 7도)쯤 되었던 것 같다. 이틀 전인 월요일 밤에는 비가 눈으로 변해 내릴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5월에 눈을 다 보겠다 싶었는데, 눈은 내리지 않았다. 두어 주 전부터 수선화는 사라져 가고, 튤립이 올망졸망 자라며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바람 불고 추운 날이 계속되니 튤립이 그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머물러 있는 게 보인다. 모두 보라색이나 혹 그 비슷한 색인줄 알고 심었던 튤립이 예상치 못한 알록달록한 색들이라서 좀 놀랐다. 게다가 새로 나온 꽃을 대여섯 개 사슴이 먹어치우기까지 해 심히 마음이 아프다. 수선화는 먹지 않더니, 튤립은 사슴이 먹을 수 있는 꽃인 모양이다. 활짝 핀 튤립도 곱..

Days in Ohio 2023.05.04

어영부영 봄

밝은 노란색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다른 꽃이 피기엔 아직 이른 때, 칙칙한 회색 앞마당을 단번에 환하게 밝혀 주니 나도 모르게 자꾸 노란색 수선화 무리에 눈길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수선화를 봄의 전령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몇 주 그렇게 등불같이 주위를 환하게 밝히던 수선화가 시들기 시작하자 주위 다른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노란 수선화가 거의 다 시들 즈음 난데없이 흰색 수선화가 딱 한 송이 피었다. 군계일학이란 사자성어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여쁘기도 하여라. 비죽비죽 땅을 비집고 올라오던 튤립에도 꽃망울이 맺힌 게 보인다. 며칠 후면 스물 다섯 송이의 튤립을 보게 되겠지. 보라색인 줄 알고 심었지만 또 어떤 색의 꽃들이 피어나게 될지는 일단 나와봐야 알 것 같다.

Days in Ohio 2023.04.24

긴 의자 덮개

왕년에 새것이었을 때는 현관 앞에 두고, 앉아서 신발을 신거나 벗는 용도로 쓰이다가, 좀 낡은 상태가 되자 버리기에는 아까워 지하실로 내려 보내 재봉질 때나 쓰이는 벤치다. 지하실로 내려 보낼 때만 해도 좀 낡은 정도였는데, 내가 모르던 사이 지하실에서 고양이들에게 박박 긁히기 딱 좋은 가구였던 모양이었던지, 세상에나, 네 모서리마다 발톱에 긁힌 자국이 현란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마침 넉넉하게 사 둔 인조가죽이 있어 덮개를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네 귀퉁이 모두 똑같은 길이에 90도 각도를 딱딱 맞추고 늘어짐 없이 반듯하게 재봉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서너 번 박았다, 뜯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대충 괜찮아 보이는 시점이 도래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차피 구석마다 또 긁힐 것은 뻔한..

Days in Ohio 2023.03.21

수선화

수선화, 매년 봄이면 앞마당 구석에 나지막이 겨우 몇 송이 피어 봄이 오기 시작했음을 알리던 꽃에 불과했다. 매년 보던 그 꽃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수선화임을 알았을 때, 꽃의 생김새가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생뚱맞아 보여 살짝 배신감까지 드는 거였다. 영문 이름(Daffodil)의 발음은 또 수선화(水仙花)란 어여쁜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또 어찌 그리 안 어여쁜 느낌을 주는 것인지, 소리 낼 때마다 한 호흡 멈춘 다음 말하게 된다. 작년 늦여름, 상점에서 튤립 구근을 살 때 단지 그 옆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내 손에 들게 되었다. 나도 왜 덥석 수선화 구근을 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덕에 구근 50개로 땅속에 있던 수선화는 2월 중순에 이미 정신없이 잎을 내기 시작하고 ..

Days in Ohio 2023.03.12

윈드차임

뒷마당 어디쯤, 묵직하게 깊은 소리를 내는 윈드차임 하나를 두고 싶은 마음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긴 했다. 얼마 전 아마존을 뒤져 보니 파이프 외경이 30.5mm 되는 것들은 가격이 제법 비쌌다. 하나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윈드차임 하나를 만들자고 알루미늄 파이프 등 재료를 여기저기서 구하는 것도 어수선한 낭비 같아 방법은 아닌 듯싶었다. 재료만 사놓고 그걸 또 언제 만들지는 기약이 없을 수도 있으니, 역시나 아니다 싶었다. 한데 며칠 전 장을 보러, 한 달에 한두 번쯤 들르는, 대형 마트에 갔더니 파이프 외경이 38mm인 듬직해 보이는 윈드차임이 떡하니 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닌가. 가격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혹여나 묵직한 윈드차임이 유리창으로 날아와 유리가 깨지는..

Days in Ohio 2023.03.06

일러도 너무 이른

내내 춥다가 요 며칠 난데없이 낮 최고기온이 화씨 70-73도(섭씨 21-23도)까지 올라 덥기까지 했다. 반짝 따뜻해진 날씨에, 얇은 여름옷을 입고 길에 나와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이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편도 달리기에 완벽한 날씨라며 나가서 실컷 뛰다 들어왔다. 퇴근길에 언뜻 본 마당에는, 작년 가을 심은 수선화와 튤립 구근들이 시방 땅을 비집고 마구 싹을 틔우시는 중이다. 당장 오늘밤부터 기온이 다시 영하로 떨어진다는데, 모두 얼어버리면 이를 어쩌나. 새싹을 반기는 마음이 들기는커녕 불안 불안한 마음만 앞선다.

Days in Ohio 2023.02.17

수사슴 세 마리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중,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작은 뿔을 가진 수사슴 세 마리가 우아한 몸짓으로 눈 덮인 뒷마당을 노니는 게 보인다. 무엇보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 보여 보는 나도 덩달아 즐겁고 반갑다. 손전화에 달린 사진기의 줌을 당겨 찍어 봤으나, 사진들이 선명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때를 대비해 망원 렌즈 달린 사진기를 늘 가까이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Days in Ohio 2023.01.27

연말연시 주말

지난 주말 나흘, 이번 주말 다시 사흘을 집에서 지내려니, 하는 일 없이 쉬는 것도 더 이상은 재미없고 힘들다는 생각에 미친다. 뭐라도 하며 손을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언젠가 한번 시도해 보려던 일 하나를 찾아냈다. 봉지에 '쌀가루'라고 쓰여있는 걸 찹쌀가루인 줄 알고 샀다가 반죽을 해보고 나서야 맵쌀가루인 걸 알게 된 커다란 쌀가루 한 봉지가 냉동실에 지난 몇 년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그걸 없애보기로 한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가래떡 및 떡볶이용 떡 만드는 게 생각보다는 쉬워 보였다. 뭘 남기나 싶어 봉지를 다 털어 시작했더니 그 양이 제법 많다. 서서 두어 시간 반죽과 씨름을 했던 것 같다. 떡 모양 빚어 놓고 말리는 중이다. 인터넷서 찾은 방법은 이렇다: 맵쌀가루 익반죽한다 - 5분쯤 치댄다 - ..

Days in Ohio 2023.01.02

A Bomb Cyclone

용어도 낯선, 폭탄 싸이클론 (Bomb Cyclone)! 하지만 그게 어떤 날씨를 지칭하는 것일지는 느낌이 훅 왔다. 날짜까지 콕 집어 2022년 12월 22일 목요일 밤부터 12월 26일 월요일까지 날씨가 대단히 나쁠 거란 예보는 일주일 전부터 있었다. 나는 목요일까지 일을 하고 금토일월 나흘을 쉬기로 했으니, 마치 딱 그 나흘은 꼼짝도 말고 집에 숨어 있으란 경고로 들렸다. 목요일 저녁까지만 해도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금요일 새벽 2-3시에 기온이 급속히 떨어지더니 내리던 비는 바닥에 얼어 버린 상태로 그 위에 눈이 많이 내렸다. 금요일 아침 창밖을 내다보니 대략 6-10인치쯤 내린 것 같은데, 눈이 곱게 내려 쌓인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바람이 휘몰아쳐 눈으로 언덕을 만든 곳도 있고, 눈이 전혀 없..

Days in Ohio 2022.12.25

나의 은행나무

이젠 오하이오에도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내가 정말 좋아해 '은행나무'하면 떠오르는 나이 많이 먹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따로 있다. 집에서 차로 90여분은 걸리는 거리에 있으므로, 그 나무와는 일 년에 한두 번이나 들러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다. 철이 지나 잎이 모두 떨어져 버렸을 거라 생각하며 해 다 저문 오후 5시 10분쯤 들렀는데, 아직도 나무에는 잎이 많이 달려 있는 게 보였다. 나무가 건강해 보이는 게, 아직 떨어질 잎이 많이 남은 게, 황금빛 융단인 양 나무 아래 은행잎이 수북한 게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얼마 전 시댁 사촌 하나가 그 은행나무 앞 집을 샀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 그런 인연이! 내가 그 은행나무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많이 퍼져 그 나무는 '왈리의 은행..

Days in Ohio 2022.11.28